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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4 끝나지 않은 친일
  2. 2009/12/31 사회통합을 위하여

“우리는 왜 갈라져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진중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게 다행일지 모른다. 이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미미하거나 체념하고 산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원인은 바로 일제의 침탈과 식민지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미국과 소련간의 이념대결로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의 역사적 산물이 6.25 전쟁이다.

오는 8월 29일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울러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 주기 이기도 하다. 뿐 만 아니라 광복 65주년과 6.25 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로써 일제 강점과 해방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등 영욕의 역사가 여러 개 겹치는 특별한 해이다.

잠시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돌아보자. 안의사는 1907년 8월 1일 국외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망명 길에 오른다. 그 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노모와 처 그리고 형제들은 장자인 안의사와의 기약없는 이별을 염려하여 모두가 만류한다. 이를 두고 신채호 선생이 이르기를 “누가 처자를 어여삐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는 법이니 나라 사랑과 아내 사랑은 서로 같이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이렇듯 일제 시대의 애국지사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바쳤다.

같은 해인 1907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섰을 때 또 한 편의 조선 역사는 사리사욕과 배신이 극의 경지에 이르고 마침내 36년이라는 비극의 서막을 열게 된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또히로부미를 앞세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이어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은 조선과 일본의 병합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천하의 매국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매국 행위가 1910년 8월 29일 발효된 한일강제병합이고 어언지간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기미가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천황폐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천대 만대 살자던 그 노래가 아직도 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태평양전쟁과 천황을 위한 총동원령으로 조선의 민초들은 전장으로 끌려갔고 우리말 사용을 금했으며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또 탄광, 철도 도로, 비행장 건설, 군사시설, 하역수송, 토건업, 정신대등의 강제 징용을 당해야 했다. 한마디로 조선인은 일본 본토와 천황을 위한 노예였을 뿐이다. 이러한 악랄한 일제의 수탈을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교과서에서는 이른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왔다. 즉 일제 식민지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망조와 가혹한 수탈에 대해 분노하고 마땅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일제를 미화하고 친일을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아직도 이완용의 후손이 아무런 사과없이 버젓이 고위 공직에 앉아 있고,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었는데 송병준의 손자들이 부평에서 부동산 반환 소송을 하고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 그리고 여전히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과 8월 29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폭염과 살을 에는 그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 선열들에게 잠시나마 머리를 조아리려 한다. 진정한 참회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소회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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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와 오정모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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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을 체결한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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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8/24 20:39 2010/08/24 20:39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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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사회통합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더 이상 분열로 치닫게 되면,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기 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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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 고건 전 총리

 
맹자 3편 4절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하편, 득도다조장(得道多助章) 제1장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은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은 못하다” 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은 전쟁을 두고서 한 말이다. 하늘이 주는 이로움은 땅이 주는 이로움보다 못하고, 땅이 주는 이로움은 인화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천군만마가 있어도 땅에서의 이익을 얻지 못하고, 군사들이 단결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화란 단순히 서로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 협력하는 마음까지 얻어 내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다. 그만큼 국가나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통합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단언컨대 이념의 양극화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통합위원회의 인선을 두고서 아무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람이니, 좌파니, 군사독재 시절의 극우니 하는 등의 시비가 나도는 것은 유감이라 할 것이다. 기실 좌파 우파라는 흑백논리는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는 매우 천박하고 해괴한 주장에 불과하고 나라를 노쇠하게 할 뿐이다. 오늘날은 한 국가의 지도자이든, 정책이든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가 혼재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다. 예컨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케인즈주의가 그것이고, 케인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가 또한 그것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고 고든 브라운 총리의 집권 노동당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적 기본원리는, ‘국민주권의 원칙’,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사회국가의 원리’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혹자는 ‘사회국가’라는 말만 들어도 지레 경을 칠 것이다. 사회국가란, 사유재산제를 보장하고 자유경쟁의 원칙과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 사회정의, 경제민주화를 가미한 경제 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정책 중의 하나가 ‘국민건강보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살피자면, 이념양극화와 국론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분단이라는 원죄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40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60년이 되어도 여전히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치유되지 않고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분단이라는 원죄와 함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때로는 섬뜩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추구하는 이상 북한을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고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국민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의 다양성에 대해 시쳇말로 수구골통이니 좌파빨갱이니 하는 언설은, 무지의 소치이자 경박함의 극치이고 어쩌면 그 사람 인간성 자체가 문제이다.

이참에 한 가지 짚고 가야할 게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념의 대립과 분열을 치유해야한다. 이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회통합의 촉진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개인과 기업 모두가 나눔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다. 연말이 되면 그저 생색내기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였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강도 만난 자에게 이웃이 되겠는가?” 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진정 사회를 통합하고 상생하려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때문에 적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지역주의의 문제이다. 어느 나라이든 어느 정도의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패권주의로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아직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혼사하는 것을 꺼리고, 선거에서 투표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경상도 전라도라는 지역을 따지지 말고 그 정당이나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를 보고 투표하도록 하자. 그래서 좌파니 우파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구태의 종지부를 찍는 사회통합의 원년이 되게 하자.

중국 정치지도자 주은래가 자주 인용한 말이다.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란 것이다. 가치와 뜻이 동하면 구하고, 다르면 존중한다는 뜻이다. 사회통합이 절실한 우리가 마음에 한번쯤은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합하여 사회통합이라는 공의에 우리 교회가 함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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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12/31 13:32 2009/12/31 13:32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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