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일본의 원폭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였다. 핵폭탄 세례를 받은 두 도시는 65 년의 세월이 흘렸음에도 남은 방사능 잔재가 내 육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심사를 괴롭혔다. 히로시마의 원폭 자료관을 둘러보면서 느낀 핵폭탄의 위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참혹한 광경은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게 했다. 1945년 8월, 두 도시는 원폭의 광풍과 수천도의 열 그리고 방사증 잔재에 의해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일본이 세계최초의 피폭국가이지만 그 와중에 조선인이 7만 명이나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도 애꿎게 피폭국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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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를 돌아본 후 후쿠오카에 있는 ‘아소탄광’을 찾았다. 아소탄광은 아소다로 전 수상 가문이 설립한 회사이다. 아소타로의 할아버지인 아소 다기치가 창립한 회사인데 조선인 강제징용자 약 8천명을 동원하여 출발한 회사이다. 강제징용자들은 하루에 겨우 연명할 정도의 양식으로 연일 탄광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캐낸 석탄은 일본국군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초토화하는 광란의 전쟁 놀음에 사용되었다.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은 관부 연락선을 타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고된 노동속에서 고국의 부모형제를 그리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상당수이다. 아소가문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부를 축척했을 뿐 만 아니라 오직 천왕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그날 강제징용자로 끌려가 탄광 노동중에 사망한 무연고자 묘지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울려펴진 아리랑 곡조는 유난히 슬펐다.

지난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발간한 ‘대안교과서’에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와 일제식민지배를 합리화하였다. 일제는 폭정이었지만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는 것이 핵심논리이다. 이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후손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동일하고 그 작업을 후소샤 교과서와 지유교과서 등에서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배후에 자민당 우익 세력인 아소와 같은 정치인들이 있다.

오늘자 국민일보 기사를 보면 일제 식민지 당시 일본의 군수공장 대부분이 조선인을 강제징용하였고 그 대표적인 기업이 미쯔비시와 일본제철, 아소탄광 등으로 나와 있다. 내가 볼 때 이런 기업 외에도 일본 도처에 크고 작은 기업과 국가공사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동원되었고 조선 본토마저 그들의 병참기지를 만들고 양곡을 일본으로 공수시키는 등 이중 삼중고를 겪게 했다.

아소 탄광처럼 1930년대 약 8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이라면 매우 큰 기업이다. 따라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 근대화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한갓 노예 정도로 다루고 오직 그들의 광기 서린 전쟁과 근대화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오늘이 3.1절 91주년이고 오랜 세월이 흘렸다. 3.1절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기철 목사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기철 목사님은 네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주의 종이었고 가시밭과 같은 삶을 살았다.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의결하여할 때 주기철 목사는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유치장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 조선의 예루살렘아, 너에게서 영광이 떠났도다! 우뚝 솟은 모란봉아, 통곡하여라! 대동강아 대동강아! 나와 함께 울자 울자 라고.

그가 네 차례의 투옥으로 끝내 1944년 해방 한 해를 눈앞에 두고 몸이 해체되는 한계와 모진 고문과 병고로 4월 21일 천국으로 갔다. 그는 뼈가 아리는 모진 고통속에서도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키고 일제에 무릎 끓지 않았다.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신앙과 민족의 문제를 눈물로 기도하였다.

91년 전의 3.1 운동은 일제 압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고하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의연히 떨친 뜻 깊은 날이다. 이날은 일제의 강압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틀을 만든 날이요, 폭력과 압제에 항거하는 비폭력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든 날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계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쾌거이다.

다시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주기철 목사님이 옥에 네 차례나 갇혀 차가운 겨울날을 눈물과 고통속에 지내는 동안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은 붕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이행하고 추후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최후 황국신민으로 적성을 다하기로 함

소화 13년 9월 13일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라고 적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총과 칼로 조선을 침탈하고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지금에와서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가슴 아픈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오명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역사와 잘못된 행동은 회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이고 어떠한 신앙 형태를 보이는 지,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 만큼의 고난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3.1절에 죄인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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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3/02 00:05 2010/03/02 00:05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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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삼성라이온스에서 선수로 뛴다는 것은 야구선수로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연봉 억대를 받고도 불안한지 소위 스타 아내들의 부업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그 주인공은 진용용 선수인데 나는 진갑용이라는 야구 선수를 잘 모른다. 그의 아내 손미영씨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갑용 선수의 아내가  삶을 사는 자세는 귀감이 되고 배워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삶을 사는 데 새겨야 할 인생 이야기이기도하다.

"선수 아내들이 자주 찾아와서 사업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 봐요." 진갑용(36·삼성 라이온즈)의 아내 손미영 씨는 요즘 선수 아내들의 사업 관련 문의에 답하느라 바쁘다. 5년 전 연탄 불고깃집을 시작으로 2년 후 커피숍까지 열며 지금은 두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두 가게 모두 월 매출 1000만 원이 넘을 만큼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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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씨는 "처음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불고깃집 체인을 따내고자 한 외식업체 대표를 만났는데 손 씨를 본 그 대표가 '장사할 인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손 씨는 그 불고깃집 식당에서 주방 일부터 시작해 서빙까지 해가며 충분히 식당을 운영하고도 남는 '악바리' 주부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3개월 일한 끝에 체인점의 운영권을 따냈다. 이후 선수 아내라는 걸 알면 웃돈을 받고 물건을 팔거나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 아내라는 것을 비밀로 하고 그저 생활비가 급한 주부 연기를 하며 물건 값을 깎기도 했다는 것.

이 기사를 읽고 내 자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기독교 NGO를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 몇 가지 감회를 함께 준다. 이런 자세로 직원이나 운영하는 자가 함께 뭉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글은 특정인을 겨냥하여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글이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요, 나의 충고이자 고백하는 글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여러 사람들이 읽고 마음에 새기길 바라고 또 기록에 남겨 훗날에도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통일교육문화원이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그동안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러 직원이 이곳을 다녀갔다. 그런데 대부분이 나를 실망시키고 나간 사람들이다. 물론 NGO를 운영하는 사람도 책임이 있다. 그중에 1% 정도는 묵묵히 박봉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일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사람들이 통일교육분야에 있어서 명실공히 최고의 반열에 오른 오늘날의 통일교육문화원을 이루는데 당당히 일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조건 비난하기 보다 먼저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몇 자 적고자 한다.  

먼저 세상은 야구 선수 아내 손씨처럼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험한 일에도 자신을 낮추고 성실하고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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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원은 모두가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몇 가지 특징이 있다.아주 간단히 핵심적인 내용만 적고 내 스스로의 반론이든 타인의 반론이든 다음 기회에 얼마든지 받도록 하겠다.

우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혹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비기독교인과도 만나게 된다.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무슬림과도 만난 경험이 있다. 그것도 시아파이다. 그런데 내가 10년 동안 지켜본 직원들 이른바 믿음 좋다는 기독교인들인데 공통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회성’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부득이 맥주 한 잔 할 자리가 있거나, 아니면 기쁘고 즐거운 날이 있어 파티가 열렸다고 하자. 이런 자리에서도 이들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우선 일체의 술을 금한다. 참으로 고대의 율법보다 더하고 무슬림보다 더한 것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크리스천도 그 자리가 어색하고 서먹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크리스천끼리라도 흉금을 터놓고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의 드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잘 놀 수 있긴하다. 그리고 술마시는 사람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자신은 선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술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면 공동체가 어려운 상황이든 말든 관계없이 이익을 좆아 가버린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좇는 다는 게 기독교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배우는 것은 그러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아침 혹은 적절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기에 비교적 세상의 가치보다는 영적 가치를 좇아 사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세상과 사회를 너무 모른다. 한마디로 초중학교 수준정도라면 과언일까?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회에 나오니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하는 행사가 있으면 직장일은 물론이고 열일을 제쳐두고 뛰쳐 나간다. 아무리 교회일이 중요하다지만 자신의 일터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예수께서 안식일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믿음좋다는 것과 광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네 번째는 신의 혹은 의리가 없다. 금방 이랬다 저랬다하고 돌아서버린다. 그리고 공동체가 어려워도 함께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의리라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의리를 기리하고 한다. 이것이 잘못인식되어 조폭 세계에서만 의리가 있는 줄 아는데 사실 의리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바를 하는 것' 이 바로 의리이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기리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교회와 성경에 매달린다. 다시 말해 세상의 이치란 기도와 성경도 중요하지만 땀흘려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일부 크리스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하다.

특히 라이프 스타일이 단조롭고 하나의 교의(교리적 가르침)에 편협되어서인지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힘든 것이나 어려운 일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별히 다른 종교를 믿거나 아예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보다 인간성이 다듬어진 것도 아니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들어도 찬송가나 복음가요를, 책을 읽어도 기독교 서적을, 영화를 봐도 기독교 영화를, 여행을 가도 선교지를 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극우에 가깝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고민이나 헌신을 더더욱 없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1950년대 수준의 북한관과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고 일주일 모두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상당수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의로운 것인 양 잘난 채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한 가지 더는 목사의 말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하게 여긴다. 물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자면 한이 없다. 특히 연장자나 주변 일가친지, 설날과 추석같은 명절, 심지어 직장 상사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또  소통할줄 모르거나 소통하지 않는다.

허구헌날 성경과 교회를 과잉으로 중심하여 살다보니 교회 일 외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적어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하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북한만 공산주의에 세뇌되었다고 비난할게 아니다. 이들이 율법에 세뇌되어 직장 공동체와 사회에서 누가 되고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모르게 있다. 나를 우선하여 말하건대 개독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내 자신부터 새롭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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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2/09 02:13 2010/02/09 02:13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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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환 2010/02/09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은 진갑용 선수 가족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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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사회통합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더 이상 분열로 치닫게 되면,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기 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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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 고건 전 총리

 
맹자 3편 4절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하편, 득도다조장(得道多助章) 제1장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은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은 못하다” 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은 전쟁을 두고서 한 말이다. 하늘이 주는 이로움은 땅이 주는 이로움보다 못하고, 땅이 주는 이로움은 인화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천군만마가 있어도 땅에서의 이익을 얻지 못하고, 군사들이 단결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화란 단순히 서로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 협력하는 마음까지 얻어 내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다. 그만큼 국가나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통합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단언컨대 이념의 양극화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통합위원회의 인선을 두고서 아무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람이니, 좌파니, 군사독재 시절의 극우니 하는 등의 시비가 나도는 것은 유감이라 할 것이다. 기실 좌파 우파라는 흑백논리는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는 매우 천박하고 해괴한 주장에 불과하고 나라를 노쇠하게 할 뿐이다. 오늘날은 한 국가의 지도자이든, 정책이든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가 혼재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다. 예컨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케인즈주의가 그것이고, 케인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가 또한 그것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고 고든 브라운 총리의 집권 노동당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적 기본원리는, ‘국민주권의 원칙’,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사회국가의 원리’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혹자는 ‘사회국가’라는 말만 들어도 지레 경을 칠 것이다. 사회국가란, 사유재산제를 보장하고 자유경쟁의 원칙과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 사회정의, 경제민주화를 가미한 경제 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정책 중의 하나가 ‘국민건강보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살피자면, 이념양극화와 국론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분단이라는 원죄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40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60년이 되어도 여전히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치유되지 않고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분단이라는 원죄와 함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때로는 섬뜩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추구하는 이상 북한을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고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국민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의 다양성에 대해 시쳇말로 수구골통이니 좌파빨갱이니 하는 언설은, 무지의 소치이자 경박함의 극치이고 어쩌면 그 사람 인간성 자체가 문제이다.

이참에 한 가지 짚고 가야할 게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념의 대립과 분열을 치유해야한다. 이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회통합의 촉진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개인과 기업 모두가 나눔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다. 연말이 되면 그저 생색내기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였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강도 만난 자에게 이웃이 되겠는가?” 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진정 사회를 통합하고 상생하려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때문에 적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지역주의의 문제이다. 어느 나라이든 어느 정도의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패권주의로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아직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혼사하는 것을 꺼리고, 선거에서 투표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경상도 전라도라는 지역을 따지지 말고 그 정당이나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를 보고 투표하도록 하자. 그래서 좌파니 우파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구태의 종지부를 찍는 사회통합의 원년이 되게 하자.

중국 정치지도자 주은래가 자주 인용한 말이다.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란 것이다. 가치와 뜻이 동하면 구하고, 다르면 존중한다는 뜻이다. 사회통합이 절실한 우리가 마음에 한번쯤은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합하여 사회통합이라는 공의에 우리 교회가 함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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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12/31 13:32 2009/12/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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